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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100권

불편한 편의점(김호연)/불편한 편의점/독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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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목 불편한 편의점
  • 지 은 이 김 호 연
  • 출 판 사 나무옆의자


‘푸드덕’ 요란한 소리를 눈이 쫓는다. 한 무리의 비둘기가 말간 하늘에 구름을 만든다. 아들과 서울 나들이를 끝내고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방 사는 나는 길 위에서 하루를 소비하는 서울이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감도 커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초등 3학년이 된 아들이 코로나-19로 세상 많은 것과 격리되는 느낌을 받아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더 미룰 수 없다 생각했다. 이번 서울 나들이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 아쉬워 지하도로 나와 연신 눈동자를 이곳저곳 돌려가며 서울 모습을 기억 저장 창고로 넣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햇볕 좋은 날이었다. 손등으로 눈에 그늘을 만들다 바라본 그곳에 일광욕을 즐기기 위해 갈라파고스 제도 해변에 모여있는 바다사자 무리가 보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무더기를 만든 사람들이 보도블록과 서울역에 보였다. 보도블록을 걷다 한 무리를 지나친다. 순간 마스크하고 있는 얼굴로 손이 자동으로 올라 코를 틀어막았다. 무리 주위로 초록 빈 병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다. 햇볕과 맞닿은 유리가 반짝인다. 순간 일렁이는 초록 물결은 파릇파릇 생명이 꿈틀대는 것 같은 환상을 불러왔다.
코로나-19로 쉼터자 보금자리였던 서울역사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렸다는 노숙인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집(서울역)을 버리지 못한 노숙인이 어딜 가겠나 싶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람이 빠르게 그곳을 거쳐 어딘가로 오고 가는 추억의 회전 로터리 같은 서울역이었다. 드나드는 많은 사람에 묻혀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을 거다. 역사 밖으로 내몰린 지금에는 그들의 무리만 존재하는 듯했다. 한참을 멍하니 서서 아들과 그 광경을 찡그린 눈으로 바라보는 내가 불편하게 느껴지며 독고 씨가 떠올랐다.


<불편한 편의점> 속 노숙인 독고 씨. 자신을 향해 “대체, 너는, 진짜, 누구냐고” 물었던 대사처럼 편의점과 연결된 다양한 인물들이 독고 씨 하나로 귀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내 안의 다양하고 불편한 나와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고로 책을 읽는 동안 독고 씨는 내가 되는 시간이었다.
가족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만 판단하면서 타인을 위해서는 너무도 쉽게 포용하는 모습의 염 여사가 나와 겹쳐 보였다.
노숙자 독고가 염 여사에게 건넨 “나를 나도 모르는데…. 믿을 수 있어요?”라는 말이 이렇게 아프게 다가올 수 없다.

온전히 내 생각만 옳고 다른 이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고 시간 낭비 같아한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길로 따라오지 않는 모든 사람, 그게 남편, 아들이어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무시하고 적대시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오선숙이 그랬다.

"언제나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만 바랐지. 모범생으로 잘 지내던 아들이 어떤 고민과 곤란함으로 어머니가 깔아 놓은 궤도에서 이탈했는지는 듣지 않았다. 언제나 아들의 탈선에 대해 따지기 바빴고, 그 이유 따위는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우리 사회 흔한 가장의 모습을 한 경만. 편의점을 ‘참새방앗간’으로 생각한다. 쌍둥이 딸이 점점 커가면서 교육비는 늘어나고, 사회에서는 점점 도태되는 자신의 모습에 비참함을 느낀다. 유일한 낙이 퇴근 후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참참참’을 먹는 것이다.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밀려났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스스로 무리 속으로 들어가길 주저하는 인물이다.

“아무리 벌어도 써야 할 돈은 늘어만 가는 반면 자신의 체력은 갈수록 깎여나가는 게 느껴졌다. 유일한 장점이든 성실함과 친절함의 바탕은 체력이었고, 나이가 들어가며 딸리는 체력은 성실함과 친절함을 무능력과 비굴함으로 변화시켰다.”

나 역시 가족을 위함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에 취해 스스로 돌아볼 여력 없이 점점 무기력하고 비참한 인간이 되어간다.

불명예스럽게 경찰복을 벗고 남들의 구린 뒤를 캐는 흥신소를 운영하는 곽 씨.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가 아닌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스스로 포장했으나 독고 씨를 통해 착각에서 벗어난다.

“…. 결국 고립은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민식은 가족, 특히 엄마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학창 시절 부모들이 만든 엄격한 틀에 맞지 않아 항상 이방인으로 취급받았다. 그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돈을 좇아 열심히 살았으나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점점 더 가족으로부터 튕겨 나게 했다.

“가족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도 돈이고 그에게 필요한 것도 돈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따라오는 것일 뿐 돈만이 그를 그답게 만드는 것이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인정이라는 착각이 얼마나 허수아비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는지 서글프다.

독고 씨는 서울역에서 노숙인으로 생활하다 염 여사의 지갑을 찾아주며 인연이 되어 그녀의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시작한다. 오랜 노숙 생활로 말도 더듬고, 알코올성 치매로 자신의 과거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편의점의 다양한 인물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를 건네며 내면의 껍질이 서서히 벗겨지며 점점 자신과 마주한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독고 씨 스스로 다양한 자신을 인정하므로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내 마음도 그렇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진 내 삶이 힘겹다. 내 마음의 편의점도 다양한 감정이 불편해 꺼내 쓰기 쉬운 감정만 진열하고 있다. 불쑥불쑥 쉽게 손 닿는 감정이 때때로 불편함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숨기고 회피했던 많은 나를 인정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소통과 연대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진정한 타인과의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 책을 통해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