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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주부

홍범도 장군/독립운동가를 생각하며/홍범도 장군의 절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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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누군가의 눈물은 아닐까 우려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매일매일 넘쳐나는 사건. 사고가 평범했던 일상을 파괴하고 있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제 스스로 지금 이 사회는 마치 <정상의 비정상화>란 생각에까지 미치자 입안으로 쓴 침이 고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축복을 가득 안고 이 세상에 태어난 귀하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어떤 이도 '나'를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나조차도 말입니다.
 
이런 '나'가 가정에서 학교로 사회로 점점 크고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동체에 속에 부대끼며 맞춰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선을 배웁니다. 여기서 선은 착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준점을 말합니다. 가정, 학교, 사회를 통해 각자의 기준선을 만들어 주변인과 조율하고 타협하며 이 사회에 구성원으로서 그 선을 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사회는 그 선을 무례하게 넘고 있어 불쾌합니다. 그중 하나가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비참한 최후에 가슴 아파하며 누구를 위한 삶이었나? 하는 고민을 하던 때. 그들은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 끝내 이뤘고 후대에 이름과 공적을 치하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이라고 누군가의 아들, 딸, 남편, 아내, 아버지, 어머니라는 따뜻한 가족의 테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희생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그 모든 것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경을 하고는 있는 걸까요? 이런 생각들 말입니다.
 
2년 전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식을 영상으로 봤을때 제 안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조금은 덜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장군의 78년 만의 귀환길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 흘린 뜨거운 눈물이 채 식기도 전에 지금의 사태를 맞아 안타까움은 배가됩니다.
 
이런 제 마음을 이동순 교수님의 시로 전해드립니다.
 
<홍범도 장군의 절규>
                             - 이 동순
그토록 오매불망
나 돌아가리라 했건만
막상 와본 한국은
내가 그리던 조국이 아니었네
 
그래도 마음 붙이고
내 고향 땅이라 여겼건만
날마다 나를 비웃고 욕하는 곳
이곳은 아닐세 전혀 아닐세
 
왜 나를 친일매국노 밑에 묻었는가
그놈은 내 무덤 위에서
종일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 하네
어찌 국립묘지에 그런 놈들이 있는가
 
그래도 그냥 마음 붙이고
하루 하루 견디며 지내려 했건만
오늘은 뜬금없이 내 동상을
둘러파서 옮긴다고 저토록 요란일세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내 동상 세워달라 했었나
왜 너희들 마음대로 세워놓고
또 그걸 철거한다고 이 난리인가
내가 오지 말았어야 할 곳을 왔네
 
나, 지금 당장 보내주게
원래 묻혔던 곳으로 돌려보내주게
나, 어서 되돌아가고 싶네
그곳도 연해주에 머물다가
함부로 강제이주 되어 끌려와 살던 
남의 나라 낯선 땅이지만
나, 거기로 돌아가려네
 
이런 수모와 멸시 당하면서 
나,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네
그토록 그리던 내 조국강토가
언제부터 이토록 왜놈의 땅이 되었나
 
해방조국은 허울 뿐
어딜 가나 왜놈들로 넘쳐나네
언제나 일본의 비위를 맞추는 나라
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네
 
내 동상을 창고에 가두지 말고
내 뼈를 다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보내주게
나 기다리는 고려인들께 가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