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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100권

밝은 밤(최은영)/경남독서한마당 선정도서/독후감/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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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훌쩍 넘어 새벽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그곳에 밤새 칭얼거리는 아들을 들춰 엎고 달래며 어둠과 함께 걷고 있는 내가 있다. 출산 후 온전한 밤을 보낸 적이 며칠이나 있을까. 엄마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유독 힘들고 버겁게 다가온 날들이다. 이런 밤이 계속될수록 점점 지쳐가는 나와 사무치게 생각나고 안타까운 나의 어머니가 겹쳐진다.
⌜밝은 밤⌟에 등장하는 모든 여인에게서 나의 어머니를 본다. 열일곱은 그런 나이가 아니다.”라는 문장에 애써 가둬 두었던 마음의 둑이 무너지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내가 있다.
막 결혼한 남편을 군대로 보내는 나이, 홀시아버지를 모시는 나이, 만삭의 몸으로 산으로 고사리를 뜯으러 가는 나이, 친구들과의 재잘재잘 이야기도 잃어버린 나이, 열여섯 내 어머니의 나이는 그러해야 했다.
책 속의 낱말과 문장들의 슬픔에 온전히 나를 맡긴다.
죽어가는 어미를 버렸고, 유일하게 인간으로 다가와 준 친구 새비를 추운 난리 통에 피난길로 떠밀었던 삼천. 아들로 태어나지 못해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입으로 뱉어지면 부정 탈지 몰라 속마음을 밖으로 내보일 수 없는 영옥. 이혼한 딸의 안위보다 사위가 더 걱정이고, 암 수술을 위해 병원으로 가면서도 남편 밥걱정이 먼저이고, 딸이 사위의 외도도 참아줬으면 내심을 보이는 엄마. 어린 내 몸 안에는 외로움이 전기처럼 흐르고 있어서 누구라도 나를 건드린다면 덩달아 외로워질 것이었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더는 안아주지 않고 만져주지 않고 내 손길을 그저 피하는 것은. 그런 상상을 하면 슬픈 마음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았다.”,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이혼으로 힘겨운 삶에 부모의 비난만 있어 무너지는 스스로 지키기 위한 지연이 있다.
4대에 걸친 네 여자의 비극적인 일상의 이야기이다.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냈지만 정작 지지와 위로, 사랑받아야 가족이란 이름으로 상처받고 밀쳐지는 현실을 담아냈다.
딸은 결국 엄마의 인생을 반복한다. 화는 사라지지 않으며 옮겨가고 닮아간다는 감정 대물림이 과연 이런 얼굴이 아닌지 실체와 마주하는 듯하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가? 인생의 주인공이 과연 나인가? 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시간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뱉어지는 “너 때문에, 너만 아니면”이란 단어들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사용되었는지 모르겠다.
보통의 사람들은 타인을 향해서는 한없이 너그럽고 좋은 사람이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지지해야 할 나와 가족에게는 너무도 엄격하고 날 선 눈으로 판단하고 비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때 내 내면의 욕구와 결핍, 욕망을 이해하는데 집중하던 시기가 있었다. 온전히 나라는 존재만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스스로 확신에 잡혀 나를 필요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며 살았던 지난날에 점점 지쳐가던 시기였다. 아무리 잰걸음으로 쫓아도 따라잡기에 역부족인 어린 나. 잠시 나를 위해 뒤 돌아 봐줬으면 하는 야속한 엄마의 뒷모습처럼 그 순간 그 모습이 어떤 좋은 지우개로도 지울 수 없이 각인되어 지금까지 힘들 때마다 내면을 어지럽게 하는 부유물이 되어있다.
“오늘 지나가는 길에 맞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내 남편이 이유도 모르는 병으로 죽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혼자 슬퍼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부정 탄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일어난 일을 평가하지 말고 저항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게 사는 법이라고.”
‘세상에 저항해 맞서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라 ‘. ’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 문장들이 이렇게 아프게 내 마음을 헤집은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아무리 외쳐도 무의식적으로 나보다는 타인에게 너그러운 삶을 살아라. 마음에 지고 마는 삶이 아닌지 모르겠다.
“새미 아주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의 노력을 알아보고 애쓴 마음을 도닥여주는 사람...”
나에게 너무 엄격하지 않으며, 내 아이의 마음이 나로 인해 힘들지 않길 바란다. 결코 감정 대물림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