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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교육청 창원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 사람책, 삶이 예술이되는 순간/유년시절부터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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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할 수도 없는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16살에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외할머니의 재가가 발단이지만, 외할머니도 가난한 집에 딸을 시집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듯하다.

중신아비의 소개로 아버지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당에 가득가득 쌓여있는 쌀가마니들이 딸자식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확신으로 시집을 보냈다고 한다.

막상 시집을 와 보니 마당에 쌓여있는 쌀가마니들은 온전히 아버지네 것이 아니었다.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셨다는 아버지는 가을 추수와 함께 도지세로 쌀가마니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춘궁기가 되면 정말 보릿고개를 경험하는 세월을 사셨다고 한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가정을 이룬 어머니는 매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생활을 억척스럽게 살아내셨다.

내 기억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어머니는 밭으로 아버지는 남의 집 일하는 생활로 새벽부터 밤늦기까지였다.

어린 나이의 어머니는 이런 고단한 삶에 일찍부터 병마와 함께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자신의 신체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

표면적인 질병인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손·발관절의· 변형은 물론이거니와 매일매일 고통과의 처절한 싸움으로 몸도 마음도 성한 곳이 없는 어머니였다.

지금의 의술은 많이 발전해 초기에 발견해 관리하면 큰 무리 없는 병이지만 나의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고통과 함께 힘겨운 싸움을 하셨다.

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이 있어도 삶에서 일을 손에 놓을 수 없는 힘겹고, 무거운 인생은 몸의 고통과 함께였다.

어머니의 건강 상태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안 좋아지셨고, 내가 중학생일 때부터는 일 년 중 꼬박 반년은 병원에서 생활하셨다.

일 년 부지런히 일해 알뜰살뜰 돈을 모으면 병원비와 건강보험료(이때는 보험일 수가 적어 목돈으로 보험료를 내야 했다)로 거의 지출되었다.

그러니 긴병에 효자 없다고 아버지도 점점 지쳐가셨고, 우리 남매도 허약하신 어머니의 짜증을 받아내기가 버거웠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노름하고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셨다.

그럴수록 어머니는 점점 더 아버지에게 집착하며, 처음에는 몸에 좋은 약술이라고 드시기 시작해 점점 술에 빠져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매일매일 집안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고, 그곳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어머니는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나는 철들면서부터 어린 어머니가 싫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 같은 반 친구의 어머니가 젊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는 모습을 본 후로는 더했다.

솔직히 온전히 어린 어머니라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몸이 아픈 어머니이면서 매일 술에 취해 있는 어머니라 더 싫고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어머니는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해 삶을 살아내셨지만, 남편과 자식들로부터 아픔을 온전히 위로받지 못했고, 점점 더 멀리하는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며 더 마음의 상처를 받으며 하루하루 외로움과 함께였을 테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온전히 미워할 수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10대를 보냈다.

 

 

 

*위 글은 경상남도교육청 창원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단계별 자서전쓰기 수업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