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비라도 쏟아질 듯한 꾸물꾸물 날이었습니다. 이날은 습도 높아 더위가 더 기승인 날임에도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날 마산지혜의바다도서관에서 있을 강연 덕분일 것입니다.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2024년 명사의 SEA間_정지아 작가" 강연 날입니다. 2022년부터 시작해 2023년 가장 핫했던 작품인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작가를 만나다는 것이 무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 마산지혜의바다도서관_2024년 명사의 SEA間 ※
;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삶의 이야기_배려와 관심이 가져오는 나비효과를 주제로 정지아 작가님의 강연이 있습니다.
일 시 9. 7.(토) 14:00
장 소 1층 구암홀
개인적으로 2023년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기록한 듯한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저에게 큰 울림이 있었던 소설이었습니다.
강연이 있을 무대에 작가님이 집필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책이 전시되어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끼워 넣어야겠습니다.
드디어 정지아 작가님이 무대에 섰습니다. 대부분의 강연자는 PPT로 강연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오롯이 작가님의 이야기로 무대를 가득 채웠습니다. 여태까지 들었던 강연 중 가장 귀를 솔깃하게 한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은 작가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어떻게 대중 앞에 내놓게 됐는지 이야기를 풀어 주셨습니다.
작가는 본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했다. 하지만 쉽게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았고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고 했다. 자신 스스로 장편을 쓸 그릇이 안 된다며 생각을 접어뒀다고 했다. 그러다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의 "어렵다. 넌덜머리 나는 진정성"이라는 작품에 대한 평가에 큰 깨달음이 왔고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가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다 작가의 어머님을 돌보기 위해 구례로 내려와 생활하면서 변화가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작가는 소설은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응하는 서사 양식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하지만 지금과 과거의 자본은 완전히 달라졌으나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응하는 새로운 서사가 싹트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자신은 여전히 시대의 낡은 소설로만 쓰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했다.
예술가는 가장 선진적인 세계의 흐름에 서 있어야 당대의 모순을 누구보다 빨리 캐치하고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자신이 자본화도 덜 된 시골 구례에 사는 것이 선진적인 세계의 흐름에서 멀리 떨어진 듯해 깊은 우울감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을 단단하게 덮고 있던 생각을 깨기 시작했다.
작가 스스로는 무의식 중에 똑똑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며 똑똑한 사람을 더 우선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빨갱이의 자식으로 불운한 사람은 오직 자신 뿐이라고 생각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도 이 모든 생각은 구례에서 서서히 깨졌다. 근현대사를 관통해 살아낸 할머니들의 살아있는 이야기에서 똑똑하다는 것이 허울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구례에 내려와 보니 너무 많은 빨갱이의 자식과 가족들이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자신은 그래도 그들보다 낫지 않나!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삶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인데 삶의 지혜가 닿지 못하는 지식 나부랭이로 세상을 안다고 까불었구나 생각했다. 그때부터 작가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구례에서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더 자세히 들어야 볼 수 있게 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구례에서 자신의 삶을 짓누르고 있던 이데올로기가 가벼워졌고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무거운 톤이 아니라 조금은 가볍게 나오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했다.
작가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세상에 떠 도는 말들을 단순한 정보의 말이 아니라 사람의 한평생이 담겨있는 살아있는 말을 알아들을 줄 알고 그 말을 수집해 그 말이 삶에 어떤 진심, 진실을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자가 작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고 몇 년 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쓸 수 있겠다 생각했고 한 달 만에 작품을 완성해 지금의 베스트셀러 작품으로 탄생하게 됐다고 했다.
작가의 강연을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꾸 흘렀다. 어떤 이야기에서 어떤 지점에서 터져 나온 눈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의 해방일지> 속 아버지의 삶에서 느낀 무섭고 외로웠던 한 인간의 진심을 전달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두 시간가량의 긴 시간 동안 작가의 이야기에 푹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제 목 아버지의 해방일지
- 지은이 정지아
- 출판사 창비
아버지는 나의 우주였다. 그런 존재를, 저 육신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시간과 공간의 한 지점을 점령하고 있는 저 육신이 내일이면 몇 줌의 먼지로 화할 것이다. (p201, 본문 내용 中)
이 책의 시작은 아버지의 죽음에서부터다. 그것도 조금은 황당하다고 해야 할 듯한 죽음. 그래서 소설의 무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이 된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빨치산으로 뼛속까지 사회주의자 즉, 빨갱이였다.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다. 아버지의 이력 탓에 가족들은 연좌제라는 사슬에 묶여 쉽사리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 구성원이 되지 못했다. 주인공 아리도 자신의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서서히 가치관이 자라면서 그를 원망하고 끝내는 갈등이 대학 진학을 앞두고 폭발했다. 그때부터 아버지와 아리는 사이는 아주 덤덤했다.
하지만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자신이 얼마나 아버지를 모르고 살았는지 그의 삶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뒤늦게 알게 된다. 그리고 태워져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아버지 삶에서 자주 찾은 장소에 뿌리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함께 날렸다.
이 작품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유쾌함과 진한 감동을 함께 그려냈다. 독자인 나는 읽는 내내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책 속 아리는 장례기간을 거치고 아버지를 화장해 유골을 뿌리는 시간까지 충분히 그를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에 반해 나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무시하고 슬픔을 빠르게 봉합해 버렸다.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은 안에서부터 곪고 곪아 겉으로 터지기 일보직전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든 타인의 삶을 쉽게 재단하거나 단정할 수 없다. 그들의 삶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무수히 많은 진심과 다정함이 존재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응어리는 남아 나를 힘들게 하는 부모님을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들의 삶이 감히 내가 평가할 수 없다. 그들도 자신의 삶을 충분히 진실되고 성실하게 살아내신 분들이다.
*위 글은 경상남도교육청 마산지혜의바다도서관의 홍보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작성된 글입니다.